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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튼 워커(Milton Walker)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워커씨(만89세)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48년 9월 해병대 입대하여 1950년 8월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지프차를 몰며 전방에 있는 전방관측 장교에게 통신장비를 전달하는 등의 작전을 수행하며 그 당시 한반도 남쪽을 방어하던 미 육군을 도왔다고 한다. 한번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날 밤 주스, 쿠키, 사탕 등을 지프 구석구석에 숨겨뒀으나, 그 다음날 습격을 당해 지프가 완전 박살이 났던 일화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미 해병 1사단과 함께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한강을 건너 서울을 수복하고 38선 위쪽으로 북한군을 밀어내기 위한 전투에 참전했다. 이후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 동해쪽으로 이동하여 북한의 원산에 정박한 뒤 장진호로 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이렇게 상기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중국까지 진격하길 원했던 것 같았어요. 당시 지휘관은 올리버 스미스 장군이었는데 정찰대는 미 해병 1사단이 배속되었던 제10군단에게 계속 북한에 중공군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았어요. 장진호 북서쪽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근방에 중공군이 많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게 되었고, 산을 오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숙영지에 도착했을 때는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가 되었지요” “약 150,000~200,000명의 중공군과 북한군이 있었고 우리 병력은 10,000~15,000명밖에 되지 않아 수 적으로 매우 불리했어요. 거의 대부분의 전투는 밤에 치러졌고 중공군은 공격하기 전 호루라기와 나팔을 불어댔는데 그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소리였어요.” “식량, 의약품, 탄약 등 생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게 다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공중투하로 받은 보급품으로 4~5일 더 견디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부대원이 모두 함께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은 후퇴였어요.” “우리 해병대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후퇴하지 않기로 오늘날까지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함흥-원산 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후퇴하는 것이 더 어려웠죠. 날씨는 갈수록 추워져 영하 25~40도의 극한 추위에 강풍이 불고 눈도 내렸죠. 우리를 포위했던 중공군이 우리 진지 남쪽에 있던 다리를 모두 파괴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이 더 험난했어요. 하지만 공군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어요, 아마 공군이 아니었다면 살아남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 병력의 60~70%는 적군과의 교전과 극심한 추위로 인해 대부분 사망했어요. 나머지 병력은 계속해서 이동하는데 에만 집중하였고 다행히도 우리는 사단 본부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손과 발은 동상에 걸린 채 21일 동안 차가운 전투식량과 크래커, 쿠키, 주스로만 배를 채웠죠. 당시 한 가지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어요. 박격포 병들이 포탄을 “투시 롤(미국 초콜렛 사탕)”이라고 불렀는데 공중투하를 담당하는 부대에게 “투시 롤이 부족하니 더 보내달라”고 말하자 포탄이 아닌 진짜 투시 롤을 공중투하로 보내줬고, 초콜렛 사탕을 보며 모두가 신났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네요.“ “당시 우리가 있던 곳에는 약 100,000명의 피난민들이 있었는데 이후 부산에서 다시 정박하고 북쪽으로 올라가 38선 위쪽까지 전진했어요.” 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후 1951년 5월 중순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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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대군인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와 응원을!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고 합니다. 물론 지구상의 크고 작은 내전과 분단국가의 형태를 띤 다른 사례도 있지만 한반도의 분단은 세계적으로도 지난 냉전 이데올로기 역사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제강점하에서 광복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이데올로기와 힘의 논리에 따라 나라가 분단되고 1950년 6.25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는 등 우리나라는 참 많은 역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가안보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중요한 대한민국에서는 신체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든 병역의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사회에 복귀한 사람을 우리는 흔히 제대군인이라 칭합니다. 제대군인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장교, 준사관, 부사관 또는 병으로서 병역법, 군인 사법 등에 따라 의무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한 사람을 뜻합니다. 젊은 청춘의 시간들을 희생하여 나라를 위해 군복무를 한 이 땅의 모든 제대군인들은 그 노력과 헌신에 대하여 마땅히 국민들로부터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강원도 고성에서 26개월 간의 군복무를 하며 국토방위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전역한 제대군인으로서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대군인, 특히 일정기간 직업군인으로 군복무를 한 분들은 의무복무만을 마친 이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사회로 복귀하게 되면서 취,창업 및 구직활동 등 경제적인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국가보훈처에서는 제대군인에게 감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5~10년 이상 군복무를 한 제대군인을 대상으로 취업교육, 전직컨설팅 등을 통하여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으로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등 제대군인들이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개적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 10월 중 한주를 "제대군인 주간"으로 선정하고 "제대군인에게 감사와 일자리를"이란 슬로건 아래 다양한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제대군인 주간"은 올해 8회째를 맞이하였으며, 금년도에는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을 제대군인 주간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제대군인 주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제대군인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관심과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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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전현충원예 있는 나무는 역사성이 있어 잘 키워야
대한민국 땅에서 태어나 자랐고 호국영령이 잠들어 계신 곳에서 상록 조경수로 나뭇잎에서 향이 나는 잘 가꿔진 나무가 있다. 광복 40주년인 1985년에 개원한 대전현충원에 정원수로 있는 가이즈카 향나무다. 가이즈카 향나무는 1909년 1월,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대구 달성공원에서 기념 식수를 하였으며 이후 한반도에 일제 통치의 상징으로 관공서 등에 널리 심어졌고, 현재는 사적지 부적합 수종이라는 말이 인터넷에 퍼지는 등 제거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나무는 '일본 이토 향나무'라는 주홍 글씨를 짊어진 신세가 돼 버렸다. 필자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청에서 확인한 결과 가이즈카향나무는 향나무 일종으로 달성공원 향나무가 이토가 심은 나무라는 주장은 확인할 수 없고 문화재부적합 수종으로 발표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우리민족문화와 전통에 대한 학술정리와 연구를 수행하는 한국학 본산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정기간행물 '정신문화연구'에 김종원 계명대 교수논문 ‘일제강점기의 가이즈카향나무의 실체‘에서 발표한 내용은 일본에서 가이즈카향나무는 '가이즈카이부키'라고 하는데, 요코하마 인근 패총 유적지나 성씨에서 기인한 명칭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이즈카이부키는 요코하마 종묘상 목록에서 1928년 처음 등장한다며 이전까지 가이즈카이부키란 나무명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개화기에 일본에서 향나무가 조경수로 적극적으로 이용되면서 생겨난 상품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식물 자원에 관한 숱한 기록물에는 가이즈카향나무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이즈카향나무가 조경수로 널리 알려진 시점은 1970년대 중반 이후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 역사연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확인한 것은 1909년 1월 순종 황제가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대구 등지를 방문한 것은 사실이다. 통감부문서 9권에 순행 일정과 상황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대한매일신보’ 등 당시 신문에도 단편적인 순행 소식이 나오나 위의 통감부 문서와 신문에는 “가이즈카향나무를 기념식수” 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으며 가와이 아사오라는 인물이 쓴 ‘대구물어’라는 책에 기념식수를 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구체적인 수종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인터넷에 ‘문화재청은 가이즈카향나무를 사적지 부적합 수종으로 결정하기도 했다’라는 글과 관련하여 문화재청이 직접 배포하거나 게재한 내용이 아니어서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독립하여 40년이나 지난 시기에 개원한 대전현충원은 지금까지 수많은 수목을 심고 정성들여 가꾸고 있다. 호국영령들과 함께 해 온 이 나무들은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34년 이상 성장하여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동료들의 안장식이나 묘소에 다니시는 국가유공자님들은 현충원에서 잘 키워 온 나무가 가족이나 형제나 친구같은 존재라고 한다. 나무를 제거하라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현충원의 역사성과 지속성을 부인하는 일이며 국가 예산을 허투루 낭비하자는 것이다. 내 돈이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나무는 국적을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외래 식물도 우리 땅에서 키우고 자라면 우리 나무다. 나무가 커 온 역사와 세월을 깊이 생각해 보면서 수필가 이양하가 말한 나무 예찬을 들어보자.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요, 고독의 철인이요, 안분지족의 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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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하우 플러스(Know-How) 사업과 이동민원
40여년간 보훈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의 복지향상과 생활안정에 최선을 다하였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나의 큰 착각이었다. 막상 공직생활을 마치고 인사혁신처에서 퇴직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노하우 플러스(Know-How) 사업에 참여하면서 보훈대상자를 위한 찾아가는 이동민원업무와 소외계층에 대한 실태조사 및 고령화된 보훈가족을 위한 재가복지 서비스 지원대상 발굴업무 등을 추진하면서 나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찾아뵙는 보훈대상자분들은 내가 처음 공무원에 입문할 당시만 해도 우리사회의 주역으로 생활의 최일선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셨던 분들인데 이제는 고령과 질병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 자녀들이 모두 떠난 옛집에 독거 혹은 부부세대가 외로이 지내시고 계신 분들을 찾아뵐 때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보훈업무는 우리가 진정으로 지원해야할 보훈업무의 일부분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늦게나마 소외계층의 복지지원 대상자를 발굴하고 그 분들에 대한 재가복지 서비스 지원 등을 통하여 그분들의 노후생활에 활력소와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달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2025년이면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고 하니, 앞으로의 국가보훈업무는 모든 국민이 일상 생활 속에서 보훈의 가치를 함께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며, 고령화 사회에 부응하여 재가복지 서비스의 보완·확충은 물론, 일반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고령의 보훈대상자 분들에게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지원대책도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금번 노하우 플러스(Know-How) 사업을 추진하면서 “봉사한다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배워나간다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으며, 나 자신이 점점 익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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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 육아 나눔터, 부모프로그램 ‘숲 체험’ 행사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모도 같이 성장한다는 말이 있듯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육아 나눔터’ 나 ‘품앗이 가족’은 이웃 간 소통과 교감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지역 돌봄 네트워크이다. ‘육아 나눔터’는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 돌봄 기능을 보완하고 이웃 간 돌봄 품앗이를 연계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같은 지역, 이웃에 사는 분들과 자녀양육 정보와 물품 등을 교환하고 부모님의 재능을 활용한 다양한 학습 품앗이, 취미나 놀이 품앗이, 체험 품앗이, 육아 돌봄 품앗이 등 다양한 가족 품앗이가 이루어진다. 경기도 의정부시에는 가능동 문예숲 경기육아나눔터와 민락동 양지마을 경기육아나눔터 2곳이 있으며, 의정부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 [영상취재·편집 : 오재욱 기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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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경기도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Hantangang Skybridge in Pocheon, South Korea)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는 포천 한탄강 협곡으로 단절된 생태경관단지와 테마파크 등을 연결하는 이색적인 형태의 길이 200m, 폭 2m, 높이 50m의 보도교로 80㎏ 성인 1,5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으며 초속 40m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포천 한탄강 하늘다리와 연계하여 포천 한탄강의 주상절리 및 비경을 구경 할 수 있는 주요 산책 코스로 하늘다리에서 시작하여 북쪽 방향으로 멍우리 협곡을 따라 하늘다리로 돌아오는 6km 구간은 한탄강을 양옆을 따라서 강을 바라보며 걷다가 포천 한탄강 아래로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으며 특히 강 아래에서 협곡 등 비경을 감상 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부담없이 걷기에 최적의 코스로 형성되어 있다. [영상촬영·편집 : 오재욱 기자 / 자료출처 : 포천시청)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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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경기도 포천시 ‘비둘기낭 폭포’(The Bidulginangpokpo Falls in Pocheon, South Korea)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비둘기낭 폭포’는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대회산리에 자리잡은 현무암 침식 협곡이다. 불무산에서 발원한 대회산천의 말단부에 현무암 침식으로 형성된 협곡으로 대회산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곳에서 폭포수를 이루며 지나가 한탄강과 합류한다. 비둘기낭이란 이름은 주변 지형이 비둘기 둥지처럼 움푹 들어간 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비둘기낭 폭포라 부른다. 또 다른 설은 예전부터 양비둘기가 폭포 주변의 동굴에 서식하고 있다고 하여 비둘기낭이라 불린다고 전해진다. 예전 6.25전쟁 당시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아 마을주민의 대피시설로도 사용되었고, 군인들의 휴양지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2012년 천연기념물 제53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비둘기낭 폭포는 지질·지형학적으로 하식동굴, 협곡, 두부침식, 폭호 등 하천에 의한 침식 지형을 관찰 할 수 있고 주상절리, 판상절리 등 다양한 지질구조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탄강에 흐른 용암의 단위를 한눈에 관찰 할 수 있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주상절리는 ‘기둥모양의 돌 틈’이란 뜻으로 암석이나 지층에서 나타나는 기둥 모양의 평행한 틈(절리)이다. 주로 용암이 분출되어 굳어진 화산암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뜨거운 용암이 분출하여 식을 때 부피가 줄어들면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단면이 6각형 모양을 이루며 용암이 식는 환경에 따라 4~8각의 다양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동해안 해안 등에서 잘 발달되며 내륙에는 한탄강이 대표적인 주상절리 지역이다. 절리는 형태에 따라 기둥모양의 주상절리 외에 땅과 수평을 이루는 판상절리, 부채꼴모양의 방사상절리 등이 있다. 하식동굴은 하천의 흐름에 의해 만들어지는 동굴로서 절리나 침식에 약한 부분이 깎여 나가면서 만들어진다. 비둘기낭 폭포의 하식동굴은 한탄강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침식이 계속 이루어지면서 동굴이 더 커지고 있다. [영상촬영·편집 : 오재욱 기자 / 자료출처 : 포천시청, 한탄강지질공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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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베트남 탄호아시 티엔 손 동굴(Tien Son Cave in Thanh Hoa City, Vietnam)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베트남 탄호아(타잉화)시(Thanh Hoa City)에 있는 ‘티엔 손 동굴(Tien Son Cave)’에 가기 위해 탄호아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에게 지도까지 보여주면서 ‘티엔 손 동굴’로 가자고 했더니, 택시 기사도 잘 모르는지 한참을 헤맨 끝에 입구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조그만 흙바닥 주차장에서 동굴로 올라가는 입구에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내게 계속 무어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번역기를 가지고 통역을 시도했다. 그 사람 말이, 여기는 들어오는 택시가 없으니 택시를 기다리게 해야 나갈 때 타고 갈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관광객이 재빨리 내가 타고 온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주차장 입구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니 매표소가 있었다. 한 사람이 지키고 있었는데, 동굴 입장료는 3만동(약 천오백원)인데 안내인의 도움을 받으면 5만동(약 이천오백원)이라고 했다. 나는 동굴 안내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동굴 매표소 옆쪽에는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는 몇 쌍의 커플이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려면 2만동(약 천원)의 입장료를 내야한다고 했다. 동굴여행은 독특하고 특별했지만, 몸은 힘들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탐험을 다 마친 후에 의자에 앉아 물과 음료를 마시며 한 시간을 쉬어야 할 정도였으니. 한 시간의 휴식 후에 내려와 커플들이 사진 촬영하는 곳으로 갔다. 동굴 입장료를 지불했다고 무료로 들어갔다. 넓지는 않았지만, 사진 배경으로는 그런대로 잘 꾸며놓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커플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 승용차 몇 대만 있을 뿐 택시는 없었다.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이국의 농촌 마을과 농사짓는 모습, 그들의 종교적 풍습들을 스치듯 보면서 다음 목적지까지 두 시간 정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스마트폰 촬영 / 편집 : 오재욱 기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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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파트 화재 이렇게 대피하세요!!!
얼마 뒤면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추석은 한해 농사의 결실, 조상의 제사, 가족 모임이라는 의미가 있었다면 요즘 추석은 오랜만에 가족들을 모두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추석연휴에 풍성하고 즐거워야 할 자리에 관심부족으로 다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사례가 반복하여 발생하고 있다. 2019. 8. 1. 의정부시 H아파트 화재가 발생하였다. 시민들의 피난요령 인식과 아파트 피난방송이 미흡하여 화재규모대비 인명피해가 다수발생(경상2,단순연기흡입28) 하였다. 최근 사례와 같이 고층건물이 많은 요즘에는 화재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엄청나다. 화재가 발생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리가 평안하고 즐거운 추석 연휴를 보내기 위해 유사 시 알고 있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 화재 시 생명보호를 위한 방화문은 항상 닫혀있어야 한다. 열려있는 방화문은 피난통로로 연기가 확산되기에 방화문은 닫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둘째, 마지막 사람은 반드시 문을 닫고 피난한다. 문을 열어놓고 나간 방은 산소가 공급되어 화재를 확산시키므로 문을 닫고 피난해야한다. 셋째, 우리 집 구조와 피난 요령을 미리 알아둔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면 그 세대를 기준으로 좌, 우 방향으로 대피하고 화재 층이 아닌 층은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신속하게 대피한다. 계단식 아파트는 계단에 연기가 차 있지 않으면 화재 층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지상 또는 옥상으로 대피해야 한다. 그렇지만 연기가 가득 차 있다면 무리하게 대피하려고 하지 말고 세대에서 수건 등에 물을 묻혀 입과 코를 막고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넷째, 화재발생 시 피난방송은,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피난방송은 화재발생 상황과 피난계단 현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알려야한다. 상황판단이 고려되지 않은 피난 요령은 주거시설 등에서 인명피해를 야기 시킬 수 있다. 또한 비상구 잠금, 방화문 개방(말발굽 설치) 및 훼손(도어클로저 제거), 통로 물건적치 등으로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연휴 분위기로 안전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 즐거운 추석 연휴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가족 친지들과 함께 따뜻하고 안전한 명절을 보내기 위해 다시 한 번 화재예방을 위한 작은 관심과 주의를 당부한다. 2019.8.21.의정부소방서 소방행정과장 김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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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베트남 탄호아(타잉화)시 수상가옥(Houseboat in Thanh Hoa City, Vietnam)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베트남 탄호아시(Thanh Hoa City / 베트남어 Thanh Hóa, 타잉화)는 탄호아성의 성도이자, 탄호아성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및 교통의 중심지이다. 면적은 146,77km², 인구는 406,550명(2014년 기준)이다. 탄호아는 '레(Le)‘ 왕조를 일으킨 '레 로이(Le Loi)'가 명나라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일으킨 역사적인 전승지이다. 탄호아성(Thanh Hoa Province)은 베트남 중북부에 위치한 성으로 베트남에서 다섯번째로 큰 지역이자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서쪽은 라오스와 국경을, 동쪽으로는 통킹 만을 접하고 있으며 산악지형에 둘러싸여 있다. 이곳 사람들은 독립적이고 고집이 센 편이다. 특히, 이곳은 베트남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대거 탄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레 왕조의 황제 '레 로이'가 있다. 또한 응우옌 왕조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촬영 / 편집 : 오재욱 기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