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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2-31 11:43:58
  • 수정 2018-12-31 11: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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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국립대전현충원이 20191월의 현충인물로 한필순 국가사회공헌자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한필순 국가사회공헌자는 1933년 평남 강남군에서 태어났다. 한 박사는 공군 장교를 지내고 서울대와 미국 일리노이대, 캘리포니아대 등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다.


한 박사와 원자력의 인연은 1982년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전신인 한국에너지연구소의 대덕공학센터 분소장에 임명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원자력연구소를 핵 개발 기관으로 의심하는 미국의 시선을 의식해 연구소 이름에서 원자력이란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역할과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뿐만 아니라 상급기관에서는 한국에너지연구소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날이 갈수록 연구원들의 사기는 떨어졌고 연구소를 떠나는 연구원들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하지만 한 박사는 좌절하지 않았다. 당시 중수로인 월성 1호기가 1983년 가동 예정에 있었고 박사는 이곳에 필요한 핵연료를 전량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사업에 연구소의 사활을 걸었다. 일각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불신이 있었으나 늦은 시간까지 연구실을 돌며 연구원들을 격려하고, 연구 환경개선으로 연구원들의 사기 진작에 힘썼다.


한 박사의 이러한 열정과 헌신에 연구원들은 다시 한마음으로 뭉쳤고, 이들의 열의에 찬 노력 끝에 1985년 드디어 중수로 핵연료 양산 기술을 개발해냈다. 개발과정에서 시제품을 검증하는데 필요한 시설과 예산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 박사는 특유의 배짱과 끈기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어 1988년에는 경수로 핵연료까지 국산화해 국내 가동 중인 모든 원전에 전량 국산 핵연료 양산 공급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중수로 핵연료에 이어 경수로 핵연료까지 국산화해내자 국내의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원자력 기관들 또한 한국의 놀라운 기술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박사는 국내 원자력 기술 자립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에너지자립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한 박사가 주도한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와 한국형 경수로 개발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 문제를 해결하고 한국이 세계적인 원자력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그 기초를 마련했다.


정부는 원자로 설계기술과 핵연료 기술을 완전 자립화시키는 등 한국 과학기술계에 눈부신 업적을 남긴 박사의 공로를 기려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32호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자료제공=국립대전현충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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