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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5-28 19: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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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528,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키 등의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수집·공개한다고 밝혔다.

 

설립 50주년 및 공공기록물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공개하는 기록물은 안 의사 의거일 다음 날인 19091027일부터 1910421일까지 안 의사 관련 보도이다.

 

국가기록원은 특히 이들 신문에는 시종일관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차이쟈고우에서의 의거 준비, 체포과정,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달리니 보스톡지()는 의거일 이틀 뒤인 19091028일자에 26일 아침 9시 최전선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공작(당시 조선 통감)은 치명적 총상을 입었고, 조선인으로 밝혀진 범인이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쁘리 아무리예지()112일자는 1024일 정오, 하얼빈에서 남쪽으로 가는 차이쟈고우의 우편열차 정거장에서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이 내리는 것부터 다음날 아침, 거사를 위해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떠날 때 서로 눈물을 흘리며 큰 절로 인사하는 장면까지 르포형식으로 게재했다. 아울러 일본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첫 심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조국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병을 얻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안 의사의 진술을 실었다.

 

보스토치나야 자랴지()114일자는 이토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며,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쁘며, 나의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다.”라고 말한 안 의사의 진술을 그대로 실었다.

 

또한 신문들은 안중근 의사가 현장을 지휘하는 러시아 장교에 의해 기차역으로 옮겨진 뒤 감옥으로 이송되는 과정도 상세히 보도했다.

 

쁘리 아무리예지()116일자는 1일 있었던 이송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기차에 오르는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의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안중근은 손에 수갑까지 채워져 있었다. 열차에는 마지막으로 안중근이 올라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완전히 무관한 모습을 보였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신문은 안중근 의사의 법정진술과 사형선고 당시의 상황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쁘리 아무리예지()1910227일자는 사형을 선고한 226일 재판 상황에 대해 보도하였는데, 1시간 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였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으며, 안중근의 어머니는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전한 것으로 보도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와 관련된 보도기사가 주목을 끈다.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지()1910421일자는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후 교도소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보도했다. 종전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는 교도소 내의 묘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뿐만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영사관 인계과정 등 사후 조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안다.”라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실천했던 안 의사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 하고자 공개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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