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보훈방송=이재현 기자】 전남 영암군이 지난 9월 25일, 영암군민회관에서 전동평 영암군수를 비롯한 내외귀빈이 참여한 가운데 을묘왜변 의병장 ‘양달사 현창사업회 창립총회’ 및 ‘을묘왜변과 의병장 양달사의 영암성 수성활동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제16, 17대 전라남도 교육감을 역임한 장만채 사업회 회장은 “1천여 동안 우리 민족을 괴롭힌 일본의 왜구 근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양달사의 충효정신을 널리 선양하여 우리 영암이 의병의 고장이고 양달사가 호국영웅임을 널리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을 다짐했다.
의병장 양달사는 1555년 5월 25일, 형제들과 의병을 일으켜 영암성을 포위한 왜구를 물리친 후 홀연히 사라졌다. 1555년 12월 2일, 조선왕조실록에는 “공이 있는 양달사는 어디로 갔는가(有功達泗歸何處)”라는 한탄스런 시구가 적혀있다.
영암군에 따르면 양달사 현창사업은 1842년 전주향교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양달사의 공적과 국가 차원의 표창을 건의하는 통문을 돌렸고, 1847년 10월 19일 좌승지로 추증되는 성과도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1971년에 김기회 영암군수가 영암군청 앞의 장독샘에 공적비를 세웠고, 1974년에는 허련 전라남도지사와 강기천 국회의원 등을 고문으로 김연수 영암군수가 도포 봉호정의 양달사 어머니 묘지에 “호남창의영수(湖南倡義領袖) 양달사 선생 순국비”도 세웠다. 하지만 의병장이라는 이유로 조정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그는 46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역사의 뒤편에 갇힌 채 영암군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암군이 주최하고 사)호남의병연구소가 주관한 ‘을묘왜변과 의병장 양달사의 영암성 수성활동 학술 세미나’에서는 그 동안 역사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양달사 의병장이 국내 사학계에서는 최초로 을묘왜변의 중심인물로 다루어졌고 조선시대 영암의 선소를 통해 영암이 갖는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양달사 현창사업회는 “내년에 전라남도에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신청한 후 영암군과 협의하여 장독샘 정화사업과 시묘공원 정비사업, 영암성대첩 기념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역동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재현 기자 jky46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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