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이퍼씨(만88세)는 1948년 미 해병대 예비군에 입대했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 인천과 김포공항을 지나 한강을 건너 서울에 도달하여 북한군을 38선 위쪽으로 밀어내는 전투에 참전했다.
“끔찍한 전투였어요. 날씨는 너무 더웠고 밭을 지나면 비료 냄새가 진동했죠.”
“당시에는 북한군을 38선 위쪽으로 격퇴시켰기 때문에 전쟁이 끝났다고 당시 생각했고. 참전 중 10월에 생일을 맞이하기 며칠 전 쉐이퍼씨는 조카에게 “내가 19번째 생일을 무사히 보내게 되면 아마 80살까지 살 수 있을 거야”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어요.”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12월 1일, 유담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었던 아군은 철수 명령을 받았고 쉐이퍼씨는 그 소식을 가장 마지막으로 들은 사람이었다. 참호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뛰어가던 중 미국 경 기관총으로 무장한 중공군이 쉐이퍼씨를 향해 총을 쐈고 양쪽 팔에 총 세 번의 총상을 입은 쉐이퍼씨는 언덕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옆구리 쪽에 총상을 입고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던 그를 본 다른 해병이 그를 끌고 언덕 아래까지 내려와 지프 트레일러에 실었다. 트레일러 안에서 쉐이퍼씨는 모르핀을 맞았고 종부성사(죽음 의식)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 치료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13번의 수술을 받은 그는 결국 한쪽 팔과 다리, 발의 일부분을 절단했다.
그는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고 34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오는 10월에 88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는 그는 “항상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에 대해 큰 자긍심을 느낀다.”다고 전했다.
[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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