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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1-07 13: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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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88주년 이봉창의사 의거 기념식18() 오전 11,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정수용) 주관으로 열린다고 국가보훈처가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기념식은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시민, 학생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이봉창의사 약사 보고, 식사(式辭) 및 기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 [이봉창 의사(한인애국단 선서식을 마치고)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서울에서 출생한 이봉창 의사(1901.8.101932.10.10)19311월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했다.

 

1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실행을 결심한 이 의사는, 193112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출국하여 12월 말 동경에 도착했다. 일왕 히로히토(裕仁)193218일 동경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날을 거사일로 결정해 상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이 의사는 거사일인 193218일 동경 경시청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일왕이 나타나자 그를 향해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폭탄은 일본 궁내대신(宮內大臣)이 탄 마차 옆에 폭발하여 일장기기수(日章旗旗手)와 근위병(近衛兵)이 탄 말 두 필 만을 거꾸러뜨리는데 그쳐, 일왕 폭살 계획은 안타깝게 실패로 돌아갔다.

 

▲ [이봉창 의사 선서문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그날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30일 동경 대심원(大審院)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10일 오전 92분 이치가야 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순국하였다.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지만, 그의 의거는 1930년대 한국 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 투쟁의 선봉으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운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며, 같은 해 4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虹口公園, 루쉰공원) 의거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만보산(萬寶山) 사건으로 악화되었던 한·중 간 감정 대립도 씻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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