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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1-29 17:16:45
  • 수정 2021-01-29 17: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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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공동으로 권쾌복·배학보·유흥수 선생202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29일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에 따르면 권쾌복(1921~2009)·배학보(1920~1992)·유흥수(1921~2016) 선생은 대구사범학교 내의 비밀결사인 다혁당 (茶革黨) 사건의 주요 인물들이다.


▲ 권쾌복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다혁당은 항일운동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 대구사범학교 전 학년이 참여하는 단체를 만들기 위해 결성됐지만, 5개월 만에 일제에 발각되어 본격적인 활동은 하지도 못하고 와해됐다.


세 명의 선생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어려운 가정 형편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모습에 매료되어 19374월에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9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민족차별 교육이 자행되던 학교에서 1939년 학생들의 노동력 강제동원과 일본과 조선학생의 마찰로 빚어진 왜관사건으로 폭발했으며 많은 대구사범학교 조선인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항일운동에 뛰어드는 원인이 됐다.


▲ 배학보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세 명의 선생은 왜관사건 이후 조선 역사와 문학 관련 서적, 잡지 등을 읽고 시국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모임인 백의단을 결성했으며, 이후 다혁당으로 발전했다.


1940년에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고, 그해 1123일 유흥수 선생은 독서회 참가자들과 일제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독립할 것을 목표로 하는 비밀결사인 문예부(文藝部)’를 결성했고, 학생(學生)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부했다.


또한 다가올 독립에 대비할 목적으로 학문 분야를 연구하여 실력을 양성하는 또 하나의 비밀결사인 연구회(硏究會)’가 조직됐다.


▲ 유흥수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19412월 중순 유흥수 선생은 권쾌복 선생과 배학보 선생 등을 만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통합된 비밀결사 조직인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했다.


다혁당은 조직 체계에서 당수와 부당수를 두고, 총무, 문예, 예술, 운동부 등 4개 부서를 두고 기존의 활동을 계승했으며, 특히 문예부 산하에 문예창작부와 연구부를 두었는데, 이전의 문예부연구회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권쾌복 선생은 당수를 맡았으며, 배학보 선생은 부당수를 맡고, 유흥수 선생은 문예부 산하 문예창작부 책임을 맡았다. 이렇게 통합되어 활발한 활동을 준비하던 다혁당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활동하던 정현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내용이 발각되어 19417월에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수사과정에서 다혁당 활동이 발각되어 다혁당은 결성된 지 5개월여 만에 일제 경찰에 와해됐다. 이후 대규모 검거 열풍이 불어 194112월에 35명이 재판을 받았는데, 이 시기 비밀결사 사건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다혁당 사건은 지식인들이 변절하고 항일운동이 침체 된 시기에 벌어진 운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확신하고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운동이자 민족운동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권쾌복 선생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배학보 선생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유흥수 선생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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