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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1-01 16:29:33
  • 수정 2022-01-01 16: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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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공동으로 부춘화·김옥련·부덕량 선생을 ‘2022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1일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에 따르면 이번에 선정된 세분의 선생은 1931~1932년에 걸쳐 제주도 일대 해녀들을 중심으로 일제와 해녀조합의 수탈과 착취에 항거한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주도한 분들이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일제강점기 여성들이 주체가 된 민족운동으로, 연인원 1 7천여 명이 참여한 제주도 최대 항일운동이다. 일제의 부당한 경제적 차별과 수탈, 그리고 억압에 저항한 조직적인 투쟁으로써, ‘법정사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과 함께 제주 3대 항일운동의 하나로 꼽힌다.

▲ 부춘화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 김옥련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 부덕량 선생 / 사진제공=국가보훈처


세분의 선생 모두 제주도 구좌면(, 구좌읍) 출생으로, 부춘화 선생은 15세에, 김옥련 선생은 9세에, 부덕량 선생은 13세에 가족 생계에 보탬을 위해 어린 나이에 해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제주도의 토지는 척박하여 여성이라면 해녀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웠고, 근대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들은 1928년부터 1931년까지 하도보통학교 야학강습소에서 함께 공부하고 근대 항일·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시작했다.


1930년 해녀조합의 우뭇가사리 해조류 부정판매에 항의하던 하도리 청년들이 일제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하도리 해녀들도 함께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931 12월 일제의 해녀 착취에 항의하기 위해 세분은 하도리 해녀 회의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


1932 1 12일은 제주시 구좌면 세화리 장날이자, 제주도사(, 제주도지사) 겸 해녀조합장이 부임 후 순시하러 구좌면에 오는 날에 하도리 해녀들을 포함한 제주 일대 해녀들이 호미와 비창(전복을 따는 도구)을 휘두르며 시위를 시작했다.


특히, 세분의 선생은 해녀들을 규합하며 시위에 앞장섰고, 모든 해녀 투쟁 참여자를 대표하여 도사의 조합장 겸직 반대, 일본 상인 배척등의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제주도사와 직접 협상했다.


이러한 과정에 위협을 느낀 제주도사는 요구조건을 5일 내에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주도사가 돌아간 이후 일제는 무장경찰을 출동시켜 1 23일부터 27일까지 34명의 해녀 주동자들과 수십명의 청년들을 체포했다.


세분의 선생은 경찰에 체포되어 미결수로 수 개월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었고, 안타깝게도 부덕량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극도로 쇠약하여 28세 나이로 사망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부춘화 선생에게 2003년 건국포장을, 부덕량 선생에게는 2005년 건국포장을 각각 추서했으며, 김옥련 선생에게 2003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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