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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07 1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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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안미생 선생(1919.7.13.~2008.11.24.)1940년대 중국 중경에서 한국독립당 당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선생은 안중근 선생의 동생인 안정근 선생(‘87 독립장)의 딸이자,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62 대한민국장)의 맏며느리로,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정세에 밝아 중경 임시정부의 비서로 활약했다.

 

▲ 한국독립당 환국기념 사진(1945. 11. 3).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3일 한국독립당 간부 및 당원들이 중국 중경을 떠나기에 앞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앞쪽의 동그라미 부분이 안미생 선생이다. / 사진출처=『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제44권 (국사편찬위원회, 2011)


▲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상해 도착 광경(1945. 11. 5). 1945년 11월 5일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 도중 중간 경유지인 중국 상하이에 잠시 내려 이동하면서 찍은 것이다. 사진 왼쪽의 동그라미 부분이 안미생 선생이다. / 사진출처=『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제44권 (국사편찬위원회, 2011)


▲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상해 도착 광경②(1945. 11. 5). 1945년 11월 5일 임정 요인들이 중간 경유지인 중국 상하이에서 찍은 사진이다. 김구 주석 바로 오른쪽에 안미생 선생이 있다. 선생의 밝고 자신감 있는 표정이 주변 임정 주요 요인들의 암울한 표정과 크게 대비된다. / 사진출처=『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제44권 (국사편찬위원회, 2011)


광복 직후인 194511월 임시정부 요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할 때 중간 경유지인 상해 공항에서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사진 촬영에 임해 남다른 성격과 능력의 소유자였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 명문가로 잘 알려진 안중근 가문과 김구 가문의 만남으로도 기억된다. 부친인 안정근 선생은 물론 오빠 안원생 선생(‘90 애족장), 남편 김인 선생(‘90 애족장)이 이미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바 있어 대를 이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로 손꼽힌다.

 

▲ 가족과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안미생 선생. 뒷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안미생 선생, 어머니(이정서), 아버지(안정근:안중근 의사 동생), 조카(조동위)이다. 안미생 선생의 유품 중 하나이다. / 사진출처=안중근의사기념관


▲ 시아버지 김구 선생과 포즈를 취한 안미생 선생(1946. 12. 24). 두 인물의 잔잔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김구 선생과 세련된 코트와 가방으로 멋을 낸 안미생 선생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독립운동가 1세대와 2세대 간 연속성과 차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안미생 선생의 유품 중 하나이다. / 사진출처=안중근의사기념관


선생은 안타깝게도 1960년대 미국 이주 후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에서야 선생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다 2008년 쓸쓸히 사망한 사실이 알려져 세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2022년 제103주년 3.1절을 맞이하여 건국포장을 추서했다(자료 및 사진제공=국가보훈처).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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