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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23 16: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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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전쟁기념관은 20225월의 호국인물로 김지섭 의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김지섭 의사(1884.7.21.~1928.2.20.)1884년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풍북면 오미동(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났다.

 

공립 상주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집안 족형 김응섭의 영향으로 진로를 바꿔 재판소 통역관 시험에 합격, 1909년 금산구(錦山區)재판소 통역관보 겸 서기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의 국권이 피탈되고, 각별한 관계였던 금산군수 홍범식이 나라를 되찾으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자, 1913년 모든 직을 내려놓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김지섭 / 사진출처=전쟁기념관


19193·1운동이 일어난 뒤 중국으로 망명한 김지섭 의사는 1922년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가입 이후 총독부 등 조선 내부의 식민통치기관 및 주요 인사를 공격하기 위해 폭탄을 경성으로 반입하였으나 아쉽게도 경찰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이외에도 거사를 위한 군자금 모금 등 활발한 투쟁 활동을 벌였다.

 

▲ 의열단 김지섭 신임장 / 사진출처=전쟁기념관


19239월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한국인들을 학살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격노한 김지섭 의사는 일본 본토를 직접 타격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의열단원들과 일본 제국 의회 개회 중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의하고 직접 의거를 자청하였다.

 

▲ 김지섭 의사 의거지 니주바시 / 사진출처=독립기념관


1220일 수류탄과 여비를 건네받고 일본으로 밀항한 김 의사는 10일 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이듬해 13일 기차를 타고 도쿄로 향했다. 그러던 중 의회가 휴회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자 곧 목표를 일본 왕궁으로 변경하였다. 15, 궁성이 있는 히비야로 향한 김지섭 의사는 해가 지자 궁성 정문 니주바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니주바시 투탄 의거). 그러나 폭탄을 지하에 오래 보관한 탓에 습기가 들어 뇌관이 작동하지 않았고, 급박한 나머지 다른 폭탄도 안전핀을 뽑지 못한 채 던졌다.

 

▲ 1924년 4월 25일 동아일보 기사-니주바시폭탄범인은 의열단원 김지섭 / 사진출처=전쟁기념관


현장에서 체포된 김지섭 의사는 1925812일 공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치바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투옥된 지 4년만인 1928220일 순국하였다.

 

유해는 화장되어 고향에 안장되었다가 광복 후 사회장으로 경북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로 이장되었으며 2004112일 대전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김지섭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복장(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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