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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탁 수경, 국립대전현충원 2018년 9월의 현충 인물 선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이 살신성인의 의로운 전경대원 ‘주병탁 수경’을 했다고 발표했다. 순직경찰 주병탁 수경은 2001년 4월 16일 해양경찰 전투경찰로 입대해 동년 6월 29일까지 해군훈련소 및 경찰종합학교에서 군사기본훈련과 전경직무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군산해양경찰서 111정을 거쳐 2001년 12월 29일부로 군산해양경찰서 홍원파출소 장포출장소로 전입해 근무를 시작했다. 주 수경은 2002년 8월 13일 서천군 장포리 해안에서 100m 해상에 빠져 위급한 상황에 처한 어린이 오 군을 구조하기 위해 바닷물로 뛰어 들었다. 주 수경은 100m를 헤엄쳐 허우적거리는 오 군을 꼭 붙잡고 다시 건너오기 위해 힘을 썼으나 만조로 불어난 바닷물의 몰아치는 거센 파도에 휩쓸리며 안타깝게도 순직하여 주위를 슬프게 했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고자 했던 주 수경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알려지자 군산에 마련된 빈소에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고, 김대중 대통령은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준 주 수경의 빈소에 해양수산부장관을 보내어 고인을 애도하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정부는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어린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준 주 수경에게 1계급 특진(상경에서 수경)과 해양경찰공로장을 추서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경찰제2묘역 509묘판 1515호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자료출처 : 국립대전현충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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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선 애국지사, 국립대전현충원 2018년 8월의 현충인물 선정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이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용대로 활약한 여성 광복군 ‘전월선(1923.2.6~2009.5.25) 애국지사’를 8월의 현충인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월선 애국지사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1939년 9월 중국 귀주성 계림에서 조선의용대에 입대해 일본군에 대한 정보수집 등 공작활동을 전개했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으로 편입된 그해 4월 20일부터 광복 직전까지 광복군 제1지대 대원으로 활동했다. 전 애국지사는여성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김근수(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애국지사와 결혼해 부부가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정부는 전월선 애국지사의 공로를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4묘역에 안장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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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윤 육군하사, 국립대전현충원 2018년 7월의 현충인물 ... 6.25전쟁 당시 공비토벌작전 참전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이 ‘김화윤 육군하사’를 2018년 7월의 현충인물로 선정했다.김화윤 육군하사는 부산에서 태어나 6·25전쟁 당시 공비토벌작전 등을 참전해 조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김 하사가 소속된 수도사단은 북한의 후방까지 맹진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다 3.8선을 중심으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지속된다. 이때 국군의 후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공비들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백운산과 덕유산 등 험준한 산악지대에 거점을 두고 국군과 유엔군의 보급로 차단, 식량 약탈, 통신망 절단, 살인, 방화, 전투근무지원시설 위협 등 후방교란으로 전후방이 어지러운 상태에 놓이게 됐다. 육군본부는 후방지역 군사시설 보호와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2개 사단 규모의 군단급 특수임무부대 ‘백야전전투사사령부’(백야사)를 창설하여 수도사단과 제8사단 7개 연대를 기동타격대로, 경비부대와 예비 연대 그리고 경찰부대를 저지부대·거점수비대로 편성하고 1951년 말부터 1952년 2월 말까지 호남지역 공비토벌작전을 전면 개시했다. 김 하사는 수도사단 26연대 3중대 3소대 분대장으로 공비토벌작전에 참전, 분대를 진두지휘하여 백운산 지역 위장동굴에서 공비1개 분대를 생포한 후 정밀 수색해 공비참모장을 사살하고 추가로 공비 24명을 생포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다. 정부는 조국수호에 앞장섰던 김 하사의 공로를 기려 1952년 을지무공훈장과 1954년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사병 제1묘역(122묘판 8924호)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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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은 장군, 국립대전현충원 6월의 현충인물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이 ‘김성은 장군(1924~2007)’을 6월의 현충인물로 선정했다. 김성은 장군은 6.25전쟁 당시 해병대 최초 단독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김 장군은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46년 대한민국 해군 참위(현 소위)로 임관하고 1949년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 참모장을 거쳐 해병1연대장, 해병학교장과 해병 제1사단장 등을 역임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당시 중령으로 통영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해 성공시켰다. 이 작전은 당초 거제도에서 적을 저지할 계획이었으나 김중령은 현지 정찰을 통해 이를 과감히 변경해 통영으로 진출해 적을 물리치는 전과를 세웠다. 외신도 이 기습적인 상륙작전의 성공에 ‘귀신 잡는 한국 해병’으로 각국에 보도하여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해병의 살아있는 신화가 되었다. 김 장군은 이외에도 서울탈활작전, 영덕·안동지구 작전, 홍천·가리천·화천지구 전투 등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53년 9월 해병학교장에 임명되어 해병교육단장을 겸임하며 정예해병 육성에 주력했으며, 1957년에는 해병 제1사단장에 부임해 오늘 날 해병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국방부 장관 재임기간 중 한국군 최초로 구축함 도입, 합동참모본부 설치 등 군 전력 향상과 국가방위력 증강에 관심을 기울여 자주국방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김성은 장군의 공로를 인정하여 태극무공훈장, 미 은성무공훈장, 미 공로훈장 등 다수의 훈장을 수여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됐다(자료제공=국립대전현충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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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애국지사, 국립대전현충원 2018년 5월의 현충인물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은 2018년 5월의 현충인물로 ‘김신 애국지사’를 선정했다. 김신 지사는 1922년 중국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김구(金九)와 최준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학창시절을 중국 상하이에서 보냈다. 지사는 임시정부의 비밀연락과 임정요인들 간의 주요 연락 및 정보수집 임무를 맡아서 수행했다. 1944년 6월 임정내무부원 및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그 후 중국 공군군관학교에 입교하여 운남성(雲南省)과 인도(印度) 펀잡성 라홀시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고 대일 항공전에 참가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김신 지사는 8·15해방 후 아버지 김구와 함께 귀국해 조선국방경비대에서 활동했으며 1948년 국군 창설에 참여했다. 6·25전쟁 중에는 제10전투비행전대장으로 재임하면서 미 공군이 북한군 보급로의 가장 중요한 곳인 대동강 승호리 철교를 500차례 출격하고도 폭파하지 못하던 임무를 1952년 1월, ‘저공침투 비행’이라는 새로운 공격전술을 창안하여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김 지사는 제6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내고 예편한 뒤 대만 대사, 교통부 장관, 제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후 독립기념관 초대 이사장, 백범김구기념관 관장과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 전반에 크게 공헌했다. 정부는 김신 애국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 무공훈장(충무 · 을지 · 화랑), 청조 근정훈장(근정훈장의 제1등급), 수교훈장, 광화장 등을 수여했다. 2016년 5월 19일 노환으로 별세해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 377호에 안장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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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공헌자 박영하 박사, 국립대전현충원 4월의 현충인물 ... 을지재단 설립자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국립대전현충원이 4월의 현충인물로 국가사회공헌자 박영하 박사를 선정했다. 박영하 박사는 1927년에 태어나 1945년 평양 제3중학교와 1950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박사는 6.25전쟁에 군의관으로 평양탈환작전에 참전했고 중령으로 예편한 후 서울 을지로에 ‘박영하 산부인과병원’을 개원한 뒤 1967년 병원을 국내 최초로 공익법인으로 전환해 의료의 공익화를 선도적으로 주도했다. 이후 1981년 대전을지병원(현재 을지대병원), 1995년 서울 하계동 을지병원, 2001년 금산을지병원, 2009년 서울 강남을지병원을 차례로 개원해 국내 굴지의 의료원으로 성장시켰다. 박사는 우리나라 의학발전을 위해 의료계 인재양성의 필요를 절감하고 1983년 학교법인 을지학원을 설립하여 서울보건대학(현 을지대 성남캠퍼스)을 인수했으며, 1996년에는 대전 용두동에 을지의과대(현 을지대 대전캠퍼스)를 설립했다. 서울보건대학과 을지의과대학이 2007년 통합하면서 국내 유일의 ‘보건·의료 특성화 종합대학’인 을지대학교로 거듭났다 박영하 박사는 을지로 산부인과 개원 당시 "의사는 한시도 환자를 떠날 수 없다"라며 병원 입원실을 가정집으로 개조해 일요일에도 오후2시까지 환자를 돌봤을 정도로 의사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했다. 또한 1994년 일본에서 홀로 투병 중이던 국민영웅 프로레슬러 김일 선생을 2006년 임종 때까지 병원에서 모셨던 일화는 박사의 나눔과 봉사정신이 잘 나타난다. 정부는 박사에게 우리나라 의학발전과 인재양성의 공로로 1999년 27회 보건의 날 국민훈장 ‘모란장’, 2008년 36회 보건의 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29호에 안장하여 고인의 공훈을 기리고 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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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우 하사·문광욱 일병, 국립대전현충원 3월의 현충인물
국립대전현충원이 3월의 현충인물로 연평도 포격전의 영웅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선정했다. 해병대원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은 북한군의 기습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응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여 추가도발을 막아내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사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부대의 K-9자주포 해상사격 훈련도중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방사포 170여발을 연평도 민간시설과 군부대에 발사하여 해병 장병 2명 전사 및 16명 부상, 민간인 2명 사망 및 3명 중경상 등의 인명피해와 각종 시설과 가옥 파괴 등의 재산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서정우 하사는 광주에서 태어나 2009년 2월 해병대에 입대하여 같은 해 4월 25일부터 연평부대 중화기중대에서 81mm 박격포 사수로 복무하던 중 마지막 병장휴가를 받고 귀가하다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의 임무수행을 위해 휴가를 포기, 부대로 자진 복귀 하던 중 적의 2차 폭격에 의해 가슴 부위 파편상을 입고 전사했다. 문광욱 일병은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2010년 8월 해병대에 입대하여 같은 해 11월부터 연평부대 본부중대에 전입하여 포병 사격훈련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연평도 포격도발에 의해 흉부 관통상 등을 입고 현장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공로를 기려 2010년 11월 30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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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상 국가사회공헌자, 국립대전현충원 2월의 현충인물
국립대전현충원(원장 권율정)이 대한민국 건국 1세대 경제개발의 주역 송인상(1914.03.06∼2015.03.22) 국가사회공헌자를 2월의 현충인물로 선정했다. 송인상 국가사회공헌자는 강원도 회양 출신으로 재무부 이재국장과 한국은행 부총재를 거쳐 1957년 부흥부(전 경제기획원) 장관과 1959년 재무부 장관 등 주요 경제부처의 수장을 지냈다. 특히 재임 중 국가 최초의 장기경제개발계획인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등 한국경제 근대화에 기여했다. 이후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 대사, 초대 한국수출입은행장을 역임했으며 한미협회 회장, 동양나이론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태평양경제협의회(PBEC) 한국위원장, 국제로타리 이사 등을 거쳤다. 산업발전과 민간외교에 앞장섰던 송인상 국가사회공헌자는 1986년부터는 20여년간 한국능률협회를 이끌며 기업가 정신 함양과 산업인재 육성을 위해 헌신했다. 정부는 송인상 국가사회공헌자의 공훈을 기려 수교훈장 광화장(1991), 국민훈장 무궁화장(2007)을 수여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33호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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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윤승주 일병 국가유공자(순직군경)로 등록 결정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가 고(故) 윤승주 일병을 국가유공자(순직군경)로 등록 결정하고, 유족에게 '18. 1. 3.(수)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했다. 고(故) 윤승주 일병은 '14. 4. 7. 선임병 4명에게 지속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해 사망했으며, 유족은 '14. 5. 14.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순직군경) 등록신청을 했다. 국가보훈처는 '15. 5. 27. 윤일병이 영내 또는 근무지에서 내무생활 중 상급병의 구타․가혹행위로 인한 사고 또는 재해로 사망했다고 보아 보훈보상대상자(재해사망군경)으로 의결했다. 그런데 현지 사실조사('17. 12. 6.) 결과 윤일병이 의무병으로서 주중과 주말 구분 없이 상시 대기 상태로 직무를 수행한 것이 확인됐다. 이에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는 '17. 12. 13. 고인이 의무병으로서 24시간 의무대기한 점 등을 감안, 국민의 생명보호와 관련하여 복무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아 국가유공자(순직군경)에 해당한다고 재의결했다. 이와 관련 피우진 처장은 “앞으로도 의무복무자가 영내생활 중 사망한 경우 그 경위에 대해 사실조사 등을 통해 면밀하게 검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국가보훈처는 보상과 복지 뿐만 아니라 국가유공자 심사에서도 '따뜻한 보훈‘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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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제 순국선열, 국립대전현충원 2018년 1월의 현충인물
국립대전현충원(원장 권율정)은 염재야록(念齋野錄)을 저술한 조희제(1873.12∼1939.1) 순국선열을 2018년 1월의 현충인물로 선정했다. 조희제 선생은 1873년 12월 10일 전북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절골에서 태어났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맞서 의병을 준비할 만큼 애국의식이 투철했던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선생은 기우만 의병장, 송병선 순국지사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항일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 선생은 자신이 살고 있던 임실에서 의병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재산을 털어 임실․순창․남원 등지에서 활동하던 의병을 직접 도왔으며, 옥고를 치르던 애국지사의 뒷바라지도 도맡았다. 선생의 독립운동 중 가장 중요한 활동은 ‘염재야록’의 집필․편찬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의 독립운동을 기록해 역사에 남겨야겠다고 결심한 선생은 수십 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관련 자료를 수집해 1931년 초고를 완성했다. 조 선생은 1938년 ‘염재야록’의 편찬사실이 발각돼 옥고를 치뤘으며, 일제 경찰의 잔혹한 고문과 단발 강요에 1939년 1월 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조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1묘역에 안장됐다. [자료제공 :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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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철 의사자, 국립대전현충원 12월의 현충인물
국립대전현충원(원장 권율정)이 12월의 현충인물로 심경철 의사자(1975.9.15∼2001.1.15)를 선정했다. 심경철 의사자는 1998년 목포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2급항해사로 승선중이던 2001년 1월 15일 거제 남녀도 해상에서 유조선(SK해운) P-하모니의 알 수 없는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심 의사자는 배가 침몰하는 순간 구명복을 착용하지 못한 여성 실습생 2명을 위해 자신의 구명기구를 던져 구하고 자신은 맨몸으로 혹한의 겨울바다에 뛰어 내렸다가 사고를 당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다 희생된 심경철 의사자는 2001년 9월 의사자 확정을 받고 2007년 10월 국립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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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김규재·변재우 소방관, 국립대전현충원 11월의 현충인물
국립대전현충원(원장 권율정)이 조기현·김규재·변재우 소방관을 ‘11월의 현충인물’로 선정했다. 조기현·김규재·변재우 소방관은 은평소방서 소속으로 2008년 8월 20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 당시 진압 작업을 하던 중 3층 천장이 무너져 매몰되면서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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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영웅 고(故) 차일혁 경무관 흉상 제막식 거행
호국영웅 고(故) 차일혁 경무관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9월 29일 정읍시 쌍암동 내장산 워터파크에서 진행한 제막식에는 유족,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관, 박영근 문화재청 차장, 김생기 정읍시장, 유진섭 정읍시의회 의장, 보훈 가족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흉상은 청동과 화강석 재질로 가로 2m, 세로 0.7m, 높이 2.4m 크기로 만들었다. 앞면에는 애국의식을 상징하는 무궁화와 차 경무관이 빨치산 토벌 당시 친필로 쓴 ‘진중기록’을 새겼다. 당시 제18전투경찰대대장 차 경무관은 1951년 1월 빨치산 2000여명이 정읍 칠보발전소를 포위하자, 대원 75명을 이끌고 빨치산을 격퇴했으며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하는 공적을 세웠다. 또한 차 경무관은 당시 빨치산의 은신처인 전남 구례의 통일신라시대 사찰 화엄사와 천은사, 하동 쌍계사, 고창 선운사 등을 소각하라는 상부 명령을 받았지만 무장공비의 은신을 막고자 대웅전 등의 문짝만 떼어내 불태우는 기지를 발휘해 천년고찰 문화재를 지켜낸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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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덕 경감, 국립대전현충원 10월의 현충인물 선정
국립대전현충원(원장 권율정)은 고상덕 경감(1962∼2009)을 10월의 현충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고상덕 경감은 2009년 12월 12일 전일 교통근무로 힘들어 하는 부하 직원을 대신해 파주시 탄현면 자유로 서울 방향 오금교 위에서 과속단속을 벌이다 과속차량에 치여 순직했다. 정부는 고상덕 경감의 공적을 인정하여 경위에서 경감으로 1계급 특진, 옥조근정훈장과 경찰공로장을 추서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경찰관묘역에 안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