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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 전그레이스 선생
오랜 기간 이역만리 한인 여성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 전(全) 그레이스 선생께 2020년 8월 15일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가 개최한 ‘경술국치’ 행사에 참여한 이래 1919년부터 1942년까지 샌프란시스코 한국부인회 대표, 대한여자애국단 총부 위원, 동 회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델라노지부 단장 등으로 활동하며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선생의 남편인 전득부(全得富) 선생 또한 1907년부터 1945년까지 미주에서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원 및 동 북미지방총회 구제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여러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한 공로로 2015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이역만리 미주에서 노동으로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헌신한 부부 독립운동가의 모범을 보여준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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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 단원으로 군자금 모집하다 체포되어 중형을 받은 '김중신 선생'
1920년대 후반 평북 의주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중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 김중신(金仲信) 선생께 2020년 8월 15일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비밀결사 조선독립단에 가입하고 의주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의 중형을 받았다. 선생이 소속된 ‘조선독립단’은 1920년대 초반 결성된 중국 관전현에 근거를 둔 비밀결사로, 이 단체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으로 고기용(高基用), 김만재(金萬財) 선생이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권총으로 무장까지 한 이들의 활동은 군자금 모집 대상이 당시 신문에 보도된 것만 12곳에 달할 정도로 맹렬했다(『동아일보』1927.4.3.). 선생에 대한 포상은 『동아일보』와 「가출옥관계서류」등의 자료에서 활동내용이 확인되어 이루어졌다. 의주의 빈농가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유년시절부터 노동을 하며 각지를 전전하면서도 조국독립을 위해 바친 선생의 삶은 모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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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자금 모집하다 아들과 함께 체포되어 옥고 치른 '박치은 선생'
3․1운동 직후 여성독립운동 단체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박치은(朴致恩) 선생께 2020년 8월 15일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8월 평남 강서군에서 대한애국부인회 증산지회(甑山支會) 재무부장으로 활동하고, 이듬해 8월 동 지회 재무 및 서기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 때 선생의 노모와 형제자매 등 일가족이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는데, 애석하게도 모친을 도와 독립운동 자금모집에 조력했던 장남 최창익(崔昌翊) 선생은 미결수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되자마자 22세의 나이에 순국하고 말았다. 최창익 선생께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1919년 6월 평남 평양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기독교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감리교파 애국부인회가 동년 11월 연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원조를 위해 조직한 단체이다.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으로 최순덕(崔順德)(’95 애족장), 박승일(朴昇一)(’13 애족장), 송성겸(宋聖謙)(’18 건국포장) 선생 등이 서훈을 받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돕기 위해 모자(母子)가 독립운동 자금모집을 위해 헌신한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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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서 비밀결사까지, 독립을 위해 열정을 바친 '주배희 선생'
3․1운동 당시 비밀 지하신문 등을 만들어 배포하고 독립운동 비밀결사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두 차례나 형(刑)을 받고 고초를 겪은 주배희(朱培熺) 선생께 2020년 8월 15일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3월 함남 함흥에서 최순탁(崔淳鐸)(’90 애국장) 등이 독립만세 시위를 독려하기 위해 작성한 『독립신문』을 배포하고 동년 5월에는 서울에서 배포된 항일 격문 등을 기초로 『독립신문』을 자체 제작, 역시 함흥 일대에 배포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선생의 활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출옥 후 1920년 6월 대한청년단연합회 함경도의용대 조직에 참여해 단원모집의 책임을 맡아 활동하다 다시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대한청년단연합회는 1919년 중국 관전현(寬甸縣)에 근거를 두고 지방 청년단의 연합체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로, 1920년 6월 함경남북도를 한 구역으로 하여 산하에 함경도의용대가 조직되었다. 선생 등이 체포될 때 일경에 압수된 등사판 격문에 따르면 “신성한 우리 조선민중은 어찌 포학한 일본의 통치 하에서 망국민족으로 살 수 있으랴. 우리는 피눈물을 뿌리고 광복사업을 위하여 힘쓰자”(『동아일보』1921.3.13.)고 하여 독립의 기개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신분장지문원지」등 기존에 활용되었던 행형자료 외에 최근 간행된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자료」(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9) 등이 보완됨으로써 이루어졌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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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이 주도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른 '김희인 선생'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부친과 함께 옥고를 치른 김희인(金熙仁) 선생께 2020년 8월 15일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천도교도이기도 한 선생은 1919년 3월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에서 수십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당초 화천읍 만세시위는 부친인 김창희(金昌羲) 선생의 주도에 의한 것이었다. 손병희(孫秉熙) 등의 조선독립선언 계획에 찬동한 김창희는 화천읍 장날인 1919년 3월 23일을 기해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깃발을 만들어 각 리(里)에도 연락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 계획에 따라 선생 등은 거사 당일 “조선 독립국 만세”, “화천면민단 대표자 김창희, 이은규 외 1명”이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화천읍내를 행진하였다. 선생에 대해서는 그 동안 심사에서 독립운동 자료상의 김희인(金熙仁)과 호적상의 이름이 상이하여 포상이 보류되었으나 선산김씨 족보(1960) 등을 보완하여 검토한 결과 동일인임이 확인되어 포상이 이루어졌다. 화천군 화천읍 만세운동을 주도한 공로로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부친에 이어, 차남인 선생께도 애족장이 추서됨으로써 영예로운 부자(父子) 독립유공자 가문이 탄생한 사례이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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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일대를 호령한 전해산 의진의 선봉장, 임장택 선생
전남과 전북 일대에서 전해산(全海山)(’62 대통령장) 의진의 선봉장으로 활약한 임장택(林長澤) 선생께 2020년 8월 15일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전해산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선봉장으로 일본인 처단과 의병투쟁을 위한 군수품 모집을 위해 활약하다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전해산 의진의 선봉장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조직화하는데 탁월한 공로자였다. 1909년 8월 일본헌병대 나주 헌병분견소장이 한국통감부에 올린 보고에 따르면 “전해산의 선봉장 임장택은 전해산을 수령으로 따르는 부하의 통일을 계획하고자 동 수괴의 향리인 전라북도 진안으로 갔다”(『통감부문서』1909.8.2)라고 기술하였다. 선생은 전해산 의진에 대한 일본군의 추격작전 중 탈취된 의병 ‘명부’로 신상이 노출되었다. 일제의 의병탄압을 기록한 『폭도에 관한 편책』에 따르면 일본군 광주수비대가 의병을 추격하면서 노획한 명부에 선생의 성명과 연령(27세), 거주지(전남 나주 화동) 등이 포함되었다. 선생은 1910년 2월 7일 당시 30세로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의 포상은「수형인명부」를 발굴하고 호남의병에 대한 정책연구용역을 통해 자료를 보완함으로써 이루어졌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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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지사 이철우-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에 대한 규탄성명서
일본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에 대한 규 탄 성 명 서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대한민국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부과학성이 또다시 “일본의 고유영토”, “한국이 불법점거”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담은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경상북도는 지난해 일본 문부과학성의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에 대해 300만 경북도민의 이름으로 강력 항의하고 시정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다시 과거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 한국이 불법점거’ 등 부당한 주장을 기술한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켰다. 일본의 이러한 행위는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은커녕,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까지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침략의 역사를 합리화 하려는 망동으로, 동북아 평화는 물론 한·일 양국 간 새로운 분쟁의 불씨를 만드는 비교육적 행위로서 국제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확고한 영토주권을 갖고 있는 독도에 대해, 일본 정부가 노골적으로 영토야욕을 표출하는 것은 과거 식민국의 독립을 부정하는 반역사적 도발 행위로써, 한·일 양국 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정립을 저해하는 행위임을 강력히 경고한다. 일본 정부는 역사왜곡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침략적 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만이 인류공영의 길임을 명심하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독도를 관할하는 경상북도지사로서 300만 도민과 함께 독도 영토주권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2020년 3월 24일 경상북도지사 이 철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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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장 이용섭-3‧1절 101주년 기념 성명
오늘은 3‧1만세운동 101주년입니다. 위대한 100년의 역사를 기리며, 새로운 100년을 여는 뜻깊은 첫해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으로 모든 기념행사가 취소됐습니다. 다함께 모여 3‧1정신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위기를 반드시 극복해낼 것입니다. 1919년 3월1일, 온 국민이 태극기 흔들며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평범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외침이 모여 일제의 억압 앞에 당당히 맞서는 커다란 함성이 되었습니다. 3‧1운동 정신은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으로 이어지면서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민족정신이 되었습니다. 10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건의료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위기극복능력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대구‧경북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나눔과 연대의 정신으로 함께 하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국난 극복은 국민의 결집된 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시대정신과 대의를 좇아 앞장섰던 우리 광주부터 나눔을 실천하고 힘과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코로나19의 위기, 3‧1독립운동의 정신과 하나된 국민의 힘으로 헤쳐나갑시다. 2020. 3. 1. 광주광역시장 이 용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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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장 이용섭-대구 2.28 60주년 기념 성명
대구 2‧28민주운동이 6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온 국민이 그날을 기리며 한마음 한뜻이 되고, 광주시민들은 대구 기념식에 참석하여 달빛동맹의 연대를 더욱 굳건히 하여야 할 이 순간, 우리 모두는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와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민생도 멈춰 섰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그 어느 곳보다도 대구의 고통과 어려움이 큽니다. 권영진 대구시장님을 비롯한 공직자들과 의료진, 대구시민 모두가 개인과 가족, 이웃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구를 향해 전국에서 의료진과 구급차 행렬이 이어지고 있고, 구호와 봉사의 손길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대구!” 온 국민의 뜨거운 응원이 대구를 달구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고립되었던 광주가 결코 외롭지 않았던 것은 광주와 뜻을 함께 해 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빚을 갚을 차례입니다. 정의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대구 2.28 정신과 광주 5.18 정신이 맞닿아 달빛동맹으로 이어졌습니다. 달빛동맹 형제도시 광주가 앞장서야 합니다. 의료진과 봉사자 등 인적 자원으로, 마스크, 손소독제, 생필품 등 물적 자원으로 대구시민을 지켜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강한 연대의 힘이 코로나를 이겨내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안에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내던졌던 2.28정신이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대구시민 여러분! 광주가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2020. 2. 28. 광주광역시장 이 용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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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지사 김경수-제101주년 3·1절 기념사
존경하는 350만 도민 여러분! 독립유공자 유족 여러분! 오늘은 제101주년 3․1절입니다.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희생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올해 101주년 3․1절은 코로나19 위기 경보 ‘심각’ 단계 속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에도 확진자가 발생하여 도 주관 3․1절 기념식과 여러 행사가 열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사회 감염을 막고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입니다. 오늘 경남도 두 분의 항일운동가께서 대통령표창을 받으셨습니다. 김해시의 최선호 선생은 경북 청도에서 비밀결사 동진회 활동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창원시의 변지섭 선생은 진주중학교 재학 중 일제의 교육을 비난하다 퇴학 처분을 받고 이후 강제징용의 고초도 겪으셨습니다. 1966년 도내 최초의 독립운동사인 「경남독립운동소사」를 저술하시기도 했습니다. 기념식을 갖고 도민들의 축하와 함께 전해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최선호 선생과 변지섭 선생의 유족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현재 우리 도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대응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늘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결연히 맞서 싸웠습니다. 일제의 모진 고문과 핍박도 이겨냈습니다.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너나 할 것 없이 분연히 일어나 일제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 저항 정신은 3·15의거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 6월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대해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강철은 때릴수록 단단해지는 법입니다. 도민 여러분!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강인한 저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19」도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간다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료진과 방역 공무원이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밤낮을 잊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도민들께서는 예방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고, 종교계도 예배와 집회 자제 등 방역에 협조해 주시고 있습니다. 경남 곳곳에서 마스크 등 방역물품과 성금 기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위한 금융 지원, 임대료 감면 등 이웃의 어려움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101년 전, 나이와 성별, 직업을 불문하고 한뜻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어섰던 그 때처럼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모이고 있습니다. 도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엄중한 상황이지만, 3․1절의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제101주년 3·1절을 맞이해 다시 한 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도민과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겠습니다. 2020년 3월 1일 경상남도지사 김 경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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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 이재명-제101주년 3.1절 기념사
존경하는 경기도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가족 여러분! 101년 전 오늘, 일제의 탄압에 맞서 우리 선열들께서 독립을 선언하셨습니다. “인류는 모두 평등하고, 조선인은 이 나라의 주인이며, 우리 후손이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릴 것”이라는 뜻을 밝힌 지 벌써 101년이 지났습니다. 그날, 독립을 선언한 건 단지 민족대표 33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이 일을 멈추고 부모와 아이가 손을 잡고 선생과 학생이 어깨를 마주 걸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위와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선열께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독립을 위한 함성이 들불처럼 번지는 가운데 경기도의 선열들께서 가장 앞줄에 계셨습니다. 안성시 원곡·양성에서는 2천여 주민이 함께 모여 전국에서 가장 맹렬한 항쟁을 벌였습니다. 양주 가래비와 파주 광탄, 연천군과 가평군, 경기 북부 곳곳에서 의병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화성 제암리와 송산면에서 자행된 일제의 학살 만행에도 독립을 외치는 선열들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한 외침은 한반도를 넘어 만주나 연해주,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우리 선열들이 모인 곳이면 세계 어디에나 활활 타올랐습니다. 조선 독립의 열망은 각종 교육기관이나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는 도화선이 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헌법 전문의 첫 구절은 우리가 품어야 할 정신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3·1운동은 단지 역사 속에 박제된 과거가 아닙니다. 3·1운동 정신은 4·19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4·19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광주는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께서 이룩한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3·1 운동의 정신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진정한 자주독립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위기 앞에 너나 할 것 없이 단결했던 정신은 변함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 침략의 위기를 ‘기술독립’의 기회로 만들어 낸 것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코로나19 위기 앞에서 우한 교민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신 이천시민들의 마음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단결된 힘으로 코로나19 사태도 반드시 잘 극복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경기도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가족 여러분! 3․1운동을 통해 선열들께서 이루고자 했던 새 세상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 없이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누리는 ‘공정한 세상’이라고 확신합니다. 출신과 성별, 지역과 세대, 직업과 종교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고른 기회를 갖는 세상. 공정한 경쟁을 보장받으며 기여한 만큼의 몫을 누리는 세상. 목이 터져라 외쳤던 ‘만세’ 소리에는 그런 세상에 대한 절절한 염원이 담겨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3·1운동의 진정한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 이런 자조적인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불공정이 굳어져 상식처럼 통용되는 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더 늦기 전에 바꿔야 합니다.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따라야 합니다.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존경하고 우대하는 것이 상식인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경기도는 독립유공자와 유족 여러분을 각별히 살피기 위해 독립유공자와 유족 의료비 지원 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부족하나마 존경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앞으로도 애국지사 여러분과 국가유공자분들께서 자부심을 느끼실 수 있도록 예우를 다하겠습니다. 현재 경기도에는 애국지사 아홉 분이 생존해 계십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슬픔으로 세월을 견디어 오신 유가족 여러분, 부디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을, 그 숭고한 정신과 열망을, 경기도가 언제나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3월 1일 경기도지사 이 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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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성명] 5‧18진상규명,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 9명에 대한 임명을 재가했다. 오월 유가족들과 150만 광주시민의 간절한 염원이 연내에 이루어진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5‧18진상규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명령이다. 6‧25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5‧18의 역사가 진실 위에 바로 설 때 이 땅의 민주주의도, 정의도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진실이 침묵했던 39년의 시간은 우리에게 울분과 분노의 시간이었다. 5‧18은 끊임없이 왜곡되고 뒤틀리면서 이념갈등과 지역감정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어 왔고, 진실을 지켜내고 밝혀내기 위한 우리의 몸짓은 처절하면서도 외로웠다. 5‧18진상규명 없이는 광주의 깊은 한(恨)이 풀릴 수 없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초당적 협력 속에 5‧18진상규명은 멈춤 없이 빠르게 그리고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150만 광주시민은 온전한 진상규명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여 뒷받침할 것이다. 2020년, 5‧18진상규명과 함께 맞이하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은 광주의 5‧18, 과거의 5‧18에서 세계의 5‧18, 미래의 5‧18로 나아가야 한다.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 국민통합으로, 배타성을 뛰어넘어 상대를 안아내는 포용성으로, 울분과 분노를 뛰어넘어 승리와 희망의 역사로 세워내는데 국가적 역량을 결집시켜내야 한다. 2019년 12월 27일광주광역시장 이 용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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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5·18진상규명 특별법과 군소음법 국회 통과를 환영합니다”
우리 지역 중요 현안인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과 ‘군용비행장·군사격장 소음방지 및 피해 보상에 관한 법률안’이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아쉬움이 크지만 150만 광주시민과 함께 크게 환영합니다. 오늘 통과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개정 법률은 진상규명 조사위원의 자격요건에 ‘군인으로 20년 이상 복무한 사람’을 추가하는 내용으로, 자유한국당이 발의한 법안입니다. 따라서 또 다시 추천인사 자격을 문제삼아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지연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끈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광주시민을 비롯한 우리 국민 모두는 그날의 진실이 하루빨리 명명백백히 밝혀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조속히 조사위원 추천을 마무리해 연내에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출범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주기를 촉구합니다. 군소음법의 국회 통과는 피해지역 주민들이 별도의 소송없이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우리 시민들은 헌법 제35조에 명시된 국민의 환경권에도 불구하고 수십년간 군 시설로 인한 소음피해를 겪어왔지만 ‘국가안보’라는 이름 하에 적정한 지원과 보상 없이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2일 군 소음 피해지역 지자체장들과 함께 연석회의를 열어 피해 보상을 호소하는 대정부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펼쳐왔습니다. 광주시는 이제 군 소음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만큼 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해 대통령령 제정 등 시행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서두르겠습니다. 더불어 우리 시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환경권이 더욱 보장되고 확장되도록 가일층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10월 31일 광주광역시장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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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쉐이퍼(Henry Schafer)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쉐이퍼씨(만88세)는 1948년 미 해병대 예비군에 입대했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 인천과 김포공항을 지나 한강을 건너 서울에 도달하여 북한군을 38선 위쪽으로 밀어내는 전투에 참전했다. “끔찍한 전투였어요. 날씨는 너무 더웠고 밭을 지나면 비료 냄새가 진동했죠.” “당시에는 북한군을 38선 위쪽으로 격퇴시켰기 때문에 전쟁이 끝났다고 당시 생각했고. 참전 중 10월에 생일을 맞이하기 며칠 전 쉐이퍼씨는 조카에게 “내가 19번째 생일을 무사히 보내게 되면 아마 80살까지 살 수 있을 거야”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어요.”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12월 1일, 유담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었던 아군은 철수 명령을 받았고 쉐이퍼씨는 그 소식을 가장 마지막으로 들은 사람이었다. 참호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뛰어가던 중 미국 경 기관총으로 무장한 중공군이 쉐이퍼씨를 향해 총을 쐈고 양쪽 팔에 총 세 번의 총상을 입은 쉐이퍼씨는 언덕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옆구리 쪽에 총상을 입고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던 그를 본 다른 해병이 그를 끌고 언덕 아래까지 내려와 지프 트레일러에 실었다. 트레일러 안에서 쉐이퍼씨는 모르핀을 맞았고 종부성사(죽음 의식)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서 치료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13번의 수술을 받은 그는 결국 한쪽 팔과 다리, 발의 일부분을 절단했다. 그는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고 34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오는 10월에 88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는 그는 “항상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에 대해 큰 자긍심을 느낀다.”다고 전했다.[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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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튼 워커(Milton Walker)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워커씨(만89세)는 고등학교 졸업 후 1948년 9월 해병대 입대하여 1950년 8월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지프차를 몰며 전방에 있는 전방관측 장교에게 통신장비를 전달하는 등의 작전을 수행하며 그 당시 한반도 남쪽을 방어하던 미 육군을 도왔다고 한다. 한번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날 밤 주스, 쿠키, 사탕 등을 지프 구석구석에 숨겨뒀으나, 그 다음날 습격을 당해 지프가 완전 박살이 났던 일화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미 해병 1사단과 함께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한강을 건너 서울을 수복하고 38선 위쪽으로 북한군을 밀어내기 위한 전투에 참전했다. 이후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 동해쪽으로 이동하여 북한의 원산에 정박한 뒤 장진호로 가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이렇게 상기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중국까지 진격하길 원했던 것 같았어요. 당시 지휘관은 올리버 스미스 장군이었는데 정찰대는 미 해병 1사단이 배속되었던 제10군단에게 계속 북한에 중공군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았어요. 장진호 북서쪽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근방에 중공군이 많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게 되었고, 산을 오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숙영지에 도착했을 때는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가 되었지요” “약 150,000~200,000명의 중공군과 북한군이 있었고 우리 병력은 10,000~15,000명밖에 되지 않아 수 적으로 매우 불리했어요. 거의 대부분의 전투는 밤에 치러졌고 중공군은 공격하기 전 호루라기와 나팔을 불어댔는데 그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소리였어요.” “식량, 의약품, 탄약 등 생존하는데 필요한 모든 게 다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공중투하로 받은 보급품으로 4~5일 더 견디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부대원이 모두 함께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은 후퇴였어요.” “우리 해병대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후퇴하지 않기로 오늘날까지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함흥-원산 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후퇴하는 것이 더 어려웠죠. 날씨는 갈수록 추워져 영하 25~40도의 극한 추위에 강풍이 불고 눈도 내렸죠. 우리를 포위했던 중공군이 우리 진지 남쪽에 있던 다리를 모두 파괴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이 더 험난했어요. 하지만 공군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어요, 아마 공군이 아니었다면 살아남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 병력의 60~70%는 적군과의 교전과 극심한 추위로 인해 대부분 사망했어요. 나머지 병력은 계속해서 이동하는데 에만 집중하였고 다행히도 우리는 사단 본부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손과 발은 동상에 걸린 채 21일 동안 차가운 전투식량과 크래커, 쿠키, 주스로만 배를 채웠죠. 당시 한 가지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어요. 박격포 병들이 포탄을 “투시 롤(미국 초콜렛 사탕)”이라고 불렀는데 공중투하를 담당하는 부대에게 “투시 롤이 부족하니 더 보내달라”고 말하자 포탄이 아닌 진짜 투시 롤을 공중투하로 보내줬고, 초콜렛 사탕을 보며 모두가 신났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네요.“ “당시 우리가 있던 곳에는 약 100,000명의 피난민들이 있었는데 이후 부산에서 다시 정박하고 북쪽으로 올라가 38선 위쪽까지 전진했어요.” 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후 1951년 5월 중순 미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자료제공=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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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 육아 나눔터, 부모프로그램 ‘숲 체험’ 행사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부모도 같이 성장한다는 말이 있듯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육아 나눔터’ 나 ‘품앗이 가족’은 이웃 간 소통과 교감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지역 돌봄 네트워크이다. ‘육아 나눔터’는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 돌봄 기능을 보완하고 이웃 간 돌봄 품앗이를 연계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같은 지역, 이웃에 사는 분들과 자녀양육 정보와 물품 등을 교환하고 부모님의 재능을 활용한 다양한 학습 품앗이, 취미나 놀이 품앗이, 체험 품앗이, 육아 돌봄 품앗이 등 다양한 가족 품앗이가 이루어진다. 경기도 의정부시에는 가능동 문예숲 경기육아나눔터와 민락동 양지마을 경기육아나눔터 2곳이 있으며, 의정부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 [영상취재·편집 : 오재욱 기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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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득 제30대 국가보훈처장 취임식 취임사
친애하는 국가보훈처 직원, 그리고 보훈업무 종사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제30대 국가보훈처장으로 임명받아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먼저, 지난 58년간 국가보훈처를 끌어주신 역대 처장님과 특히, 지난 2년 여 동안 ‘따뜻한 보훈’을 기치로 많은 업적을 남기신 피우진 처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맡은 바 소임과 직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해 오신 모든 직원과 보훈업무 종사자 여러분께도 감사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6.25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주요 민주화의 역사 역시 내년이면 60주년을 맞습니다. 때문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보훈’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높습니다. 저는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국가보훈처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특히, 포용적 혁신국가와 국민통합 시대를 위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수십 년 냉전을 넘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평화 정착’을 위해 큰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그만큼 국가보훈처의 역할 또한 매우 중차대한 시기입니다. ‘보훈’을 통해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께 빈틈없는 예우와 정성을 다하면서 ‘보훈문화’를 확산시켜 국민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여러분, 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입니다. 우리의 보훈은 식민지배와 전쟁, 독재라는 역사의 굴곡을 교훈삼아 다시는 이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과거에 대한 다짐입니다. 우리의 보훈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수많은 국가유공자를 존경하고 예우하는 오늘의 실천입니다. 우리의 보훈은 국민통합의 기제로 굳건하게 뿌리내려 새로운 역사를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내일의 희망이자 약속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보훈처는 국가유공자의 명예 선양과 예우, 보상, 복지·의료, 국제협력, 보훈단체, 제대군인 등 많은 분야에서 제도를 개선했고 또 현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개혁의 끈을 늦추지 말고, 혹시 아직도 불합리하거나 과거 관행에 묶여있는 것이 있다면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롭게 바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토대 위에서 보훈가족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들을 도출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나라를 위한 희생은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명예로운 일’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보훈처와 자치단체, 일부 기업과 단체가 아닌 모든 국민이 일상 속에서 기억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3,200여 보훈처 직원과 보훈업무 종사자 여러분!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사자성어인 마부위침(磨斧爲針)의 자세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도전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그리고 정성어린 업무 수행으로 전국의 보훈가족, 그리고 모든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정부부처가 되도록 더욱 노력합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 역량을 펼쳐 국가보훈처가 국정운영의 중심으로 우뚝 서도록 힘을 모읍시다. 저 역시 여러분과 함께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보훈가족과 국민들께 ‘보다 나은 정부’가 되도록 열과 성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여러분과 소통하며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 8. 16.국가보훈처장 박 삼 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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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제29대 국가보훈처장 이임사
친애하는 보훈공직자 여러분! 그리고 내외귀빈 여러분! 저는 오늘 제29대 국가보훈처장으로서 여러분께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첫 국가보훈처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막상 이렇게 여러분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되어 아쉬운 점이 있지만, 지난 2년 3개월을 돌이켜보면 여러분과 정말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그런 뜻에서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음 4가지입니다. 첫째, 국가 보훈은 독립, 호국, 민주를 아우르는 국민 모두의 통합된 가치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여러분과 함께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국가의 단결된 통합 가치’로서 보훈이었습니다.개개인의 편향된 가치나,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이념으로서 보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가가 어려울 때 몸 바친 순수한 개인의 영혼과 유가족의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이 보훈입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로부터, 그리고 편향된 사회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국가보훈의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달려왔습니다. 그 길에서 나라사랑 교육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정치적 중립 문제를 지적한 적폐청산, 그리고 김원봉 서훈 관련된 정치적 논란 등 아직도 우리는 갈등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우리 보훈처 직원, 특히 국가유공자와 접점에 있는 직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자기 일에 매진 해 온 우리 직원들이 있어, 보훈의 통합된 가치가 한 발 진전되었다고 감히 자신합니다. 저와 함께 해 온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둘째, 국가 보훈을 개인 영리나 사업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부임해서 가장 놀란 것이 존경받아 마땅한 우리 국가유공자들이 소속된 보훈단체가 수익사업과 선거로 인한 법적인 송사 등 어려움에 처한 모습이었습니다. 국민들 그리고 그 단체 회원들인 국가유공자들이 얼마나 부끄러워 할지, 국가보훈처 수장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했습니다. 이 회원들이 속한 단체가 다시 존경받게 하는 것이 우리 보훈처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개혁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직원들이 단체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항의는 물론 보이지 않는 압력도 많이 받았습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 특성상 단체와 맞서기도 어렵고, 특히나 단체를 대표하는 분들에게 반대하기가 많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이 보여준 용기와 정의로움에 박수를 보냅니다. 영혼이 젊은 여러분이 있어 국가보훈처 앞 날도 밝을 것이라 믿습니다. 셋째,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부임해서 여러분과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국가보훈처의 위상 강화입니다. 국가보훈처가 하는 일에 비해서 외부에서 인식하는 수준은 과거, 국방부 산하 기관이라는 인식이 많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규모 문제만은 아니고, 우리 스스로 국가보훈처가 해야 할 일을 ‘과거 경험’ 수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청와대 업무 분장을 보면 국방부와 보훈이 함께 ‘안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고 국회에서도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금융과 함께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보훈처 위상강화를 혁신 과제로 설정하고 노력해 왔으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합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의 근간이 되는 기관으로서 나라가 어려울 때 전 국민을 단합하는 ‘정신적 기반’으로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양한 위원회, 포럼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중지를 모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속한 국가보훈처의 위상 강화야 말로, 우리 국민의 나아갈 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훈의 미래를 다시 쓰는 일입니다. ‘보훈’은 이제 그동안의 예우와 보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미래 100년을 위한 ‘국민통합’의 매개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보훈가족이 체감할 수 있고 국민 눈높이에 맞아야 합니다. 여기에 남북관계 개선 등 다양한 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미래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준비도 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가진 고민의 깊이와 열정, 그리고 순수한 나라사랑의 마음을 익히 보아 왔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새로 오시는 신임 장관과 함께, 그리고 국민들과 함께 충분히 보훈의 미래를 다시 세워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걷게 될 ‘따뜻한 보훈’의 길이 때론 가시밭길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다리가 아프기도 할 것입니다.그러나 그 길을 걷는 여러분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보훈의 역사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 보훈공직자로서의 당당한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여러분 이름 하나하나를 다 불러서 응원하고 싶지만, 오늘은 시간 관계상 마음으로만 새기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19. 8. 14. 국가보훈처장 피 우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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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인터뷰] 이동희 충남서부보훈지청장-2019년 광복절 특집 기관장 인터뷰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2019년 광복절을 맞아 이동희 충남서부보훈지청장을 만나 광복절과 보훈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1. 먼저 간단하게 충남서부보훈지청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 곧 8월 15일 광복절이 다가오는데요 광복절의 의미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3. 오늘의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들은 이를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4. 그렇다면 호국보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5. 국가보훈처가 전국에 지청을 두고 지역 환경에 맞는 다양한 보훈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충남지역에는 유공자들이 몇 분이나 살고 계십니까? 6. 이러한 국가유공자분들과 그 보훈가족들에게 어떤 보상과 복지가 이루어지고 있나요?7. 그렇다면 제대군인을 위한 별도의 보훈 혜택도 있을까요? 8. 충남서부보훈지청에서 펼치는 보훈사업이 있으면 소개해 해 주실까요? 9.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유공자들을 예우하고 보답하는 보훈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따뜻한 보훈에 대하여 좀더 말씀하여 주실수 있나요? 10.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인터뷰 : 김희자 기자 / 촬영·편집 : 오재욱 기자)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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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덕 충남서부보훈지청장
【중앙보훈방송=오재욱 기자】 박종덕 충남서부보훈지청장의 보훈과 보훈행정 철학, 보훈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질문 1] 일반 국민들은 ‘보훈’이라는 단어의 명확한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먼저, 보훈이란?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대한민국은 수많은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으로 이룩한 자랑스러운 나라입니다. 보훈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에 보답한다는 의미입니다. 보훈제도는 어떤 나라든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건 등에 따라 형태는 달라도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보훈이야말로 한 나라를 존립케 하는 근간이라 할 수 있으며, 보훈제도의 발전이 밑바탕이 되어야 그 나라의 튼튼한 미래를 보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2] 박종덕 지청장님은 1985년에 공직에 입문해 오랫동안 보훈관련 업무를 역임하신 보훈행정전문가로 알고 있습니다. 지청장님의 보훈행정 철학이 궁금합니다. "현 정부 들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범정부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제4차 보훈발전 기본계획이 수립되었습니다. 국가를 위한 헌신이 정의롭고 당당한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하여 보훈가족 중심의 따뜻한 보훈으로 최상을 예우를 실현하는 것을 국정철학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100년을 이어주는 국민 기억사업의 대대적 추진, 희생·공헌을 합당하게 예우하는 보훈보상 강화,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을 책임지는 보훈복지 확대,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보훈사업, 혁신을 통한 존경받는 보훈단체상 정립 등 5대 분야를 선정하여 적극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질문 3] 많은 분들이 국가보훈처가 있는지도 모르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충남서부보훈지청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국가보훈처는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하신 분들을 위한 보상·예우 정책을 추진하고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며, 국가보훈을 통해 국민통합을 선도하는 기관입니다. 나라의 자주독립을 찾기 위해 일제에 항거한 독립유공자, 6.25전쟁 등 국가수호를 위해 희생하신 국가유공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신 민주유공자, 사회와 격리된 채 오랜 기간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 등을 대상으로 예우와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충남서부보훈지청은 국가보훈처 소속기관으로 당진시, 홍성군 등 충남 서부지역 8개 시·군을 관할하고 있으며, 관할 지역 보훈대상자 분들의 등록, 보상, 취업, 교육, 의료, 대부지원과 각종 선양행사 추진, 노후복지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질문 4] 충남서부보훈지청이 추진하고 있는 역점사업이나 보훈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올해는 3.1만세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한해입니다. 이에 따라, 선열들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지역민들의 독립정신 및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3.1만세운동으로 촉발된 충남 서부지역의 독립만세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재현행사를 추진 지원하였고, 대한민국 100주년을 기념한 '독립의 횃불' 전국릴레이 행사도 예산 4·3 한내장 독립만세 재현행사와 연계하여 실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 독립유공자 훈격 심사기준이 완화되면서 당시 수형(옥고) 3개월 및 태형 90도 이상의 포상기준이 폐지되어 지역의 많은 독립유공자 분들의 포상 신청이 다수 있었습니다(신청자 총 35명 중 9명은 100주년 3.1절 기념식 시 포상전수 하였고, 나머지 26명은 광복절 또는 순국선열의 날 계기로 포상 전수 예상) 또한, 금년도에는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보훈정신 계승사업을 확대하고자 정부주도로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와 협업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4월까지는 독립유공자 및 유족을 대상으로 실시하였고, 이후 국가유공자, 민주유공자를 대상으로 지속 추진할 예정입니다. 기존에 일부 지자체에서 명패사업을 실시한 곳도 있으나, 유공자 분들에 대한 예우풍토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통일된 디자인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어 올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질문 5] 우려스럽게도, 우리나라 국민 보훈의식이 다른 나라들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보훈의식을 높일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은 무엇보다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하는, 학교현장에서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호국보훈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현장 호국보훈교육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현재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위하여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국민의 보훈의식 발전이 국가유공자 예우풍토 조성에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우리지청에서는 관내 학교와 연계한 현충시설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청소년들이 국가수호시설 등이 있는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며 역사를 배움으로서 어려서부터 보훈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 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도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의식과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다양하고 유익한 보훈정책을 수립하고 역사, 문화 체험 등 현장교육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질문 6] 수준 높은 보훈의식과 보훈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역실정에 맞는 국가보훈 홍보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충남서부보훈지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우리지청의 관할구역인 충남 서부 지역은 김좌진장군, 한용운선생, 윤봉길의사 등 의인, 열사가 다수 배출된 충절의 고장입니다. 이러한 우리고장의 독립영웅을 알리기 위하여 SNS등을 통한 퀴즈이벤트, 기획 시리즈 홍보 등 국민들을 대상으로 소통이 쉽고 파급력이 큰 온라인 홍보를 중점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축제와도 연계하여 문화, 예술, 역사가 어우러진 다채롭고 특색있는 체험형 보훈행사를 통해 청소년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보훈의 가치를 전달하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질문 7]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보훈’은 무엇이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보훈은 특정 달이나 기념일마다 요란스럽게 반짝하고 지나가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의 역사에 보다 관심을 갖는 것, 기념일이면 내 집 앞에 태극기를 달고 순국선열의 희생과 공헌을 잠시나마 떠올려 보는 것, 주말이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주변 현충시설을 둘러보며 선열들의 희생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이러한 작은 일부터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재욱 기자 jbctv@jbctv.net]